4장. 통화 가치의 변화
1700년 이후 탄생한 약 750개의 통화 중에서 약 20퍼센트만이 현재까지 존재하는데, 남아있는 20퍼센트의 통화의 가치도 하락했다. 따라서 모든 통화는 평가절하되거나 가치가 사라진다고 할 수 있다. 화폐를 발행하는 목적은 채무자의 부채 부담을 줄이는 것이므로 부채 금액 대비 통화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채 부담이 줄어들어 돈과 신용이 생산성 향상으로 흘러 들어가 기업의 수익이 증가하면 기업의 주가는 상승한다. 부채 부담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재화와 서비스의 소비를 늘리고, 기업은 고용을 증가하거나 설비투자를 늘린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현금과 채권자산의 현재 수익률과 미래의 수익률을 감소시켜 사람들이 현금과 채권자산에서 탈출해 인플레이션을 헤지하는 자산이나 다른 통화로 옮겨갈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 미디어는 주가지수가 하락하는 이유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을 강조해 왔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이 곧 주가 하락을 유발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그 자체로는 주가를 하락하게 하는 원인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은 2010년대까지 10%대에 머물렀으나 아르헨티나의 국립통계청(INDEC)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들어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78.5% 상승했다. 그리고 연말에는 세 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목격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의 메르발 주가지수는 2022년 기준 2020년 대비 220배 상승하였다. 부채 부담이 높은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 가운데 경제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가장 손쉽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화폐발행을 통한 화폐가치 절하이다. 아르헨티나의 M2통화량은 지난 10년간 500% 이상 증가했다.
화폐가 시장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보다 많이 발행되자 아르헨티나 화폐의 가치(구매력)는 급락하였고 현금이나 예금, 보험은 물론 채권은 실질 가치가 점차 0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돈을 차입해서 영업자산을 매입하고 설비투자를 하는 기업은 물가 상승에 비례해 판매가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물가상승기에 매출액이 증가한다. 이 같은 이유로 기업의 주가는 물가상승기에 상승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각국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면서 오른 금리만을 보고 채권을 매수하거나 예금에 가입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는 화폐의 가치(구매력)가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원금과 이자) / (만기 시점의 물가지수 / 현재의 물가지수)로 계산해야 채권과 예금의 실제 이익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만기에 이자수익 30%를 수취하는 채권을 매수하였고, 만기 시점에 물가가 40% 상승했다면 액면으로는 30%의 이자 수익을 얻었지만 채권 보유자의 실질 구매력은 (1+0.3) / (1.4/1.0)이 되어 7%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지금은 인플레이션 시대이다. 기후 이변으로 에너지 수요가 늘고 식량 생산이 감소하며,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부채가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이자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통화 발행을 늘려 화폐의 가치를 하락하도록 조정하고,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수출하여 물가상승을 억제하던 중국이 국내외 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코로나19 유행 이전의 저물가 시대를 경험하기 힘들 것이므로 인플레이션 시대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따라서 현금과 채권을 보유하기 보다는 재무건전성을 확보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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