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아의 부자연구소입니다.
10월 4일에 네이버는 회사 한 곳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무려 2조원 이상을 지불하고 인수하는, 네이버가 사업을 시작한 후로 가장 큰 금액을 지불한 것입니다.
이 소식이 알려진 후 네이버의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요. 인수 계획 발표 이후 네이버의 주가는 20% 가까이 하락했는데요, 요즘 주식시장 분위기가 안 좋다고 해도 네이버의 하락폭은 이례적입니다.
주가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귀하니 100만명에 달하는 네이버 주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어요. 주주들은 "왜 하필 이런 시기에 그렇게 큰 돈을 들여서 이름도 잘 못 들어본 기업을 인수하냐"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네이버가 인수하기로 한 회사는 포시마크(Poshmark)라는 곳이에요. 언론과 인플루언서들은 이 포시마크라는 기업을 두고 '미국판 당근마켓'이라 부릅니다.
2011년 설립된 포시마크는 인접 지역의 개인 간 중고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선 당근마켓과 비슷하지만 거래 대상을 중고 의류나 패션 아이템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당근마켓과 차이가 있어요.
포시마크는 당근마켓에 인스타그램의 기능을 더한 패션 플랫폼에 가까워요. 포시마크 앱은 쇼핑 플랫폼이라기보단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깝게 꾸며져 있어요. 판매자가 글이나 사진을 통해 일상을 근처 지역의 이용자에게 공유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 실시간 영상이나 짧은 동영상(숏폼 컨텐츠)를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해요.
포시마크 이용자는 판매자를 팔로우할 수도 있고 판매자가 입은 옷이나 패션 아이템의 착용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과 채팅으로 소통할 수도 있습니다. 인기를 얻은 판매자는 인플루언서가 된다고 하네요.
저는 포시마크를 보면서, 포시마크가 당근마켓보다는 오늘의 집에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오늘의 집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상품이 메인으로 느껴지지 않고, 커뮤니티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느껴지거든요. 실제로 저는 심심할 때 오늘의 집 어플을 실행하고 다른 사람들의 집 인테리어를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사진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곤 하거든요.
포시마크는 한국에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진 않지만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선 8,0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앱에 접속하는 이용자 수(MAU)는 4,000만명이라고 해요. 2021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25분씩 이용자들이 이 앱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네이버가 주목한 건 포시마크가 서비스 이용자만 많이 모은 것이 아니라 이미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에요. 비교대상인 당근마켓은 3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했는데, 이런 당근마켓의 2021년 매출액은 257억원에 불과했습니다.
포시마크는 작년에 광고 수익 없이 수수료 수익만으로 3억 2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어요. 당근마켓과 비교하면 15배가 넘는 매출액을 기록한 것이죠. 포시마크의 수익 모델은 판매자들로부터 거래액의 20%를 수수료로 징수하는 것입니다. 20%의 거래 수수료는 굉장히 높은 수준인데요, 네이버가 영위하고 있는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인 '크림'의 판매 수수료가 1%(구매 수수료는 3%)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수료율을 책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포시마크에서 활동하는 판매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이목을 끄는 사진을 많이 올려서 인플루언서가 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 20%의 수수료는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요.
정리하면, 결국 네이버가 포시마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건 20%의 높은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회사의 규모를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네이버는 이미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크림뿐 아니라 일본에서는 '빈티지 시티', 유럽에서는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라는 유사한 기업을 인수해왔어요. 포시마크를 인수한 이유는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버티컬 플랫폼 북미 지역 1위 사업자인 포시마크를 인수해서 장기적인 커머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에요.
<버티컬 플랫폼>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악ㆍ쇼핑ㆍ뉴스ㆍ패션ㆍ교육 등을 세부 분야로 나눠 한 분야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검색ㆍ커머스ㆍ커뮤니티 등의 기능 중에서 한 가지 기능만으로 집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런데 네이버는 왜 중고 거래 플랫폼을 계속해서 인수하는 걸까요?
현재 네이버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 및 신세계 등의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요. 중고 거래 시장은 비교적 경쟁의 강도가 약하고,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액티베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미국 중고 시장은 2025년 약 1,300억 달러 규모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 평균 20% 성장할 것으로 전망돼요.
또 중고 거래 중개 사업은 재고관리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재고관리는 마켓컬리나 쿠팡(쿠팡은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전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던 사업모델에서 직매입 직판매 방식으로 사업모델을 수정했다. 이후 매출이 크게 증가했으나 재고관리 부담도 함께 증가한다) 같은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에요. 이와 달리 개인 간 중고 거래는 별도의 재고관리가 필요 없습니다.
문제는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 전망에도 불구하고 작년 연말부터 온라인으로 쇼핑을 즐기던 사람들이 리오프닝과 함께 이젠 밖에 나가서 돈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전반적인 소비 자체가 위축되고 있어요. 단기간에 매출이 증가할 유인은 없는 반면 포시마크는 광고비 등 마케팅 비용을 추가적으로 집행하면서 2020년에 연간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포시마크는 지난해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또 각국 정부가 돈을 거뒤들이는 정책을 펴면서 시장에 돈이 안 도니까 실리콘밸리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도 이유라고 합니다. 불경기 때문에 성장을 지속해 온 실리콘밸리에서도 경영을 효율화하기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시마크처럼 성장하는 기업에 투자하려는 사람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포시마크는 이런 분위기에선 차라리 네이버처럼 큰 기업이 인수되어 혹독한 겨울을 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2022년 6월 말 기준 네이버가 보유한 유동자산(1년 이내에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으로 현금, 보통예금, 단기금융상품, 매출채권 등이 있다) 6조원 가운데 현금및현금성자산은 2조 9천억원 정도입니다. 이번에 포시마크를 인수하기 위해 2조 3400억원을 지출하면서 승부수를 던진 것입니다.
해당 거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투자자들은 '곧 심각한 경제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데 너무 과감한 결정이 아닌가'라며 네이버의 투자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요. 차라리 그 돈을 주주들을 위해 배당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요.
반면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직 국내 매출 비중이 높은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서 경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뉴욕타임스는 네이버의 포시마크 인수를 두고 "한국의 구글로 불리는 네이버의 글로버 야망이 확대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어요.
저 또한 네이버의 포시마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좋은 투자 의사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내수 시장은 네이버가 지속해서 성장을 담보받기에 너무 규모가 작기 때문입니다. 네이버는 기업의 외형을 키우고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네이버는 일본과 미국, 유럽 시장의 문을 꾸준히 두드리고 있어요. 네이버웹툰은 올해 3월 일본 전자책 플랫폼인 이북재팬을 인수해서 운영 중인데요. 기존에 운영하던 디지털 만화(웹툰과 유사) 플랫폼인 '라인망가' 중심의 현지 콘텐츠 사업의 외연을 넓힌 것이죠.
포시마크를 인수하기 전까지 네이버의 최대 규모 빅딜(약 6억 달러)이었던 북미 지역 1위 웹소설 업체인 '왓패드' 인수로 네이버는 현재 글로벌 이용자 1억 8000만명을 확보한 상황이에요. 왓패드스튜디오는 120여 개 원작의 영상화를 진행 중인데요. 해당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화 '스루 마이 윈도'는 지난해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고 최근 개봉한 '애프터 에버 해피'는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그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북미 지역과 일본에서 몇 년에 걸쳐 진행한 콘텐츠 사업의 강화와 함께 이번 포시마크 인수로 네이버는 북미 지역 커머스 시장에도 진출을 본격화 했습니다.
아직 내수 시장에 치중되어 있는 카카오와 비교하면 굉장히 공격적인 시장 확대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죠. 국내에서 비제조업 기업 가운데 네이버처럼 해외 시장을 강하게 공략하는 기업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워렌버핏이 강조 했듯이 공포에 질린 시장에서 용기를 내는 사람이 끝내 큰 수익을 올리는 법입니다. 회사의 내재가치가 훼손되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네이버는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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