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연 7%로 오르면서 최저생계비만 쓰고 생활해도 대출 원리금(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을 못 갚는 사람이 19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616조 2,000억원이고 평균 금리는 3.96%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3월부터 현재까지 기준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한 만큼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현재 4%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시행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향후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3% 포인트 상승, 즉 6.96%에 이르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70%를 넘는 이들이 19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Debt Service Ratio의 약자인 DSR은 총체적 상환능력 비율을 의미합니다. DSR을 구하는 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 + 기타 부채 이자상환액) / 연소득
다시 말해, DSR 70%는 연소득의 70%를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사용한다는 뜻으로 연소득이 낮거나 이자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금감원은 또한 금리가 3% 포인트 상승 시 소득에서 소득세와 건강보험료만 차감해도 대출 원리금을 갚을 돈이 남지 않게 되는 DSR 90% 초과 차주도 기존 90만명에서 12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은행도 지난달에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유사한 분석을 내놓은 바가 있습니다. 금리가 올해와 내년에 각각 0.5% 포인트 인상되고 9월에 금융 지원이 종료되면 올해는 손실보전금 지급 효과가 있어 DSR이 소폭 하락하는 데 그치지만 내년에는 금융지원 종료에 따른 채무상환 부담 증가로 자영업 가구의 DSR이 46%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전망이 나오자 금융위원장은 '새출발기금'을 마련해 자영업자 25만명의 부채를 최대 90% 감면해주는 채무조정 방안을 발표했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는 사람은 바보냐"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속출하자 급히 진화에 나섰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정부의 금융 취약층 채무조정 지원대책은 주식과 가상자산 투자 실패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채무를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라며 "이들을 파산으로 몰고 가는 게 오히려 우리 경제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같은 '새출발기금'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대출자들의 경우 은행이 기금과 동등한 수준의 채무 조정안을 마련할 것을 금융위는 구두로 지시했습니다. 자율적 지시인데도 은행들이 이를 이행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금융위가 공동으로 점검단을 가동한다고 해 혼란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금융당국이 코로나 지원과 관련해 발생한 170조 수준의 대출잔액을 두고 시중은행에게 고통을 분담할 것을 촉구하면서 금융당국과 은행 간의 갈등의 골도 깊어직 있습니다.
금융취약, 소외계층의 빚을 탕감하는 문제를 놓고 금융당국은 정상적으로 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은 일부 금융 소비자의 빚을 탕감해줄 경우 성실하게 대출 원리금을 갚아 나가는 계층의 불만이 커지고 금융 부실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금융권은 취약계층의 채무 규모가 너무 크고, 대출 원금 면제가 이뤄질 경우 금융업계에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관련 대출은 171조원으로 무려 4대 금융지주의 9년치 순이익과 맞먹는 금액입니다.
국내 금융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1위인 KB금융지주의 22년 당기순이익 컨센서스는 4조 9천억원이고 나머지 3개 금융지주사의 22년 연간 당기순이익 예상치는 3조~5조원 수준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정부가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코로나 관련 대출의 만기상환 연장과 학자금 대출을 지원한 적은 있지만 이번 사태처럼 은행에게 정부 당국과 고통을 분담하라는 요구를 한 적은 없습니다.
금융 당국의 시중은행에 대한 압박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신한은행이 취약 차주 금리 인하 방안을 내놓자 다른 은행도 이런 자율적인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정부의 압박에 원금을 탕감해주는 안을 만지작 거리는 시중은행도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은행은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다중채무자를 대상으로 원금 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금융당국의 지나친 시장개입은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요소인 주주자본주의를 훼손하기에 위험합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자체적으로 차주에 따라 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있겠지만 은행도 엄연한 주식회사"라며 "부실대출을 이자 유예해주고 정상 대출로 만든 뒤 탕감하면 그 자체가 배임"이라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들어올 돈보다 이자를 더 줘야 하는 청년희망적금, 더 많은 돈이 투입되는 청년도약계좌 외에도 은행들은 이미 서민금융인 새희망홀씨 대출에 매년 3조원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며 "금융당국 말대로 새출발기금에 보유하고 있는 부실채권까지 넘기면 은행은 수조원 대 이익을 고스란히 반납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시가총액 기준 국내 2위 금융지주사인 신한지주의 주가추이를 보면 10년 전인 2012년보다 현재의 주가가 더욱 낮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캐나다 1위 은행인 로열뱅크오브캐나다는 10년 전보다 주가가 100% 가까이 상승했고, 미국 대표 시중은행 가운데 하나인 뱅크오브아메리카는 300% 가까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은행권 여신 담당자는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데 당국에선 '주기만 하는' 형태의 상품을 만들라는 압박 일변도"라면서 "시장 원리까진 바라지 않는다. 관치를 할 거면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합니다. 새 정부 들어 저소득자, 저신용자에 대한 지원책이 쏟아지면서 기준금리가 오르는 와중에도 이들 계층이 이용하는 대출상품의 금리는 고신용-고소득자에 비해 덜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국내 증시는 절대 선진국의 증시와 같아질 수 없습니다. 저소득 청년층의 목돈을 만들어준다는 취지는 너무나 훌륭하고 사회에 필요한 일이지만 그 수단이 정부의 곳간에서 나온 돈이어야지 주식회사의 곳간을 털어서는 안됩니다.
엄연히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에게 정부가 '민생안정'이란 가불기(가드 불가능한 기술)를 들이밀며 주주의 이익을 멋대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에서 금융 선진국이 될 것이란 목표 역시 달성할 수 없습니다.
2013년 이후 9년간 8개의 외국계 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탈출했습니다. 해외 금융사들이 본사에 지나치게 높은 배당을 해 국부가 유출된다는 주장도 일견 합리적일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지나친 정부의 규제와 시장개입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코로나 초기에 잠시 우리금융지주의 주식을 매수하여 수익을 본 이후로 국내 은행은 높은 배당률에도 불구하고 포트폴리오에 장기적으로 가져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국내 은행은 지역은행인 JB금융지주 정도입니다. 4대 금융지주에 비해 시가총액과 대출규모가 적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덜할 것이고, 9%에 달하는 세전배당금, 그리고 중간배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우 소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수익이 난다면 매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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